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자연과 동화되는 삶을 사는 데 충실했던 소로Henry David Thoreau(1817~1862)는 스스로를 '자연의 관찰자'라고 말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연이었다. 자연 안에는 인간 세상과는 다른 종류의 자유가 가득해서 그를 자유롭게 하고 그로 하여금 다른 무엇을 찾기보다 이 세상에 만족하게 했다. 그는 메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나 스무 살에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지만 부와 명성을 쫓는 화려한 생활을 따르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 속에서 글을 쓰며 영적인 삶을 추구했다.


소로는 생전에 자신의 저술로 경제적인 성공이나 명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가 월든 호숫가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생활한 2년간의 경험을 기록한 <월든> 19세기에 쓰여진 가장 중요한 책들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또한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여 수감되었던 사건을 통해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 권력의 의미를 깊이 성찰한 <시민의 불복종> 역시 세계 역사를 바꾼 책으로 꼽히고 있다.

 


초절주의Transcendentalism

 

소로는 이미 하버드 재학 시절부터 초절주의자 에머슨Emerson의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초절주의는 일신론뿐만 아니라 신플라톤주의, 독일 관념철학, 동양 사상과 같은 다양한 사상들에서 출발한 것으로, 인간의 감정과 직관, 그리고 신성이 내재한 자연을 중요시하고,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경향을 띤다. 초절주의자들은 ‘개인에 내재한 신성한 요소’를 믿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초절주의의 핵심은 자기 신뢰Self-Reliance, 이것은 개인의 자아 속에 내재한 신성을 믿고 의지하며, 그것을 무한히 증진시켜 나가는 것이다. 초절주의는 인간의 내재신성을 돈, 명예와 같은 세속적인 것들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정신적으로 고매한 삶을 살 것을 종용한다. 초절주의가 제시하는 개인의 이상적 삶을 실험하고 실천하기 위해 소로는 1845년 콩코드 근처에 있는 월든Walden 연못가에 직접 통나무 집을 짓고 사회로부터 고립된 생활을 2년여에 걸쳐 시도한다. 그러면서 그는 <월든>을 쓰게 된다. <월든>에 나타난 생활의 목적, 간소함, 자연관 그리고 독서관을 살펴보면 소로의 초절주의적 인생관이 분명해진다.


소로는 사회의 세속적인 통념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특히 그는 물질문명의 폐해에 대해 일찌감치 내다 보았으며 19세기를 풍미하고 있었던 낙관론, 즉 산업의 발전이 인류에게 편리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하고 있다. 인간의 삶을 비참하게 하는 것은 빈곤 그 자체가 아니라 ‘부에 대한 탐욕’이다. 값진 의상과 더 크고 멋진 집에 대한 욕심과 과시욕으로 사람들은 스스로 빈곤을 만들고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또한 막상 차지한 부는 그 소유자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구속과 부자유를 주게 된다. 소로는 다음과 같은 예화를 들려준다.


나는 한때 책상 위에 귀한 석회석 세 조각을 놓아 두고 있었는데, 매일 한 번씩 이것들의 먼지를 털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기겁을 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가구의 먼지도 아직 다 털어 내지 못하고 있는데. 나는 싫은 생각이 들어 이 돌들을 창 밖으로 내동댕이쳐버렸다.”

 


자유를 위한 간소함

 

소로는 <월든>의 첫 장 경제Economy’에서 숲 속 생활에 필요한 만큼의 경제에 대해 말하며, 의식주에 있어서의 간소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인간에게 있어서 ‘야생동물들이 체온을 유지’하는 정도의 의식주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며, 인간이 지나치게 의식주에 집착하여 불행을 초래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본다. 그의 말에 의하면 옷은 오래 입으면 그만이고, 먹는 것은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먹을 수 있으면 되고, 비바람을 막아주는 은신처 정도의 집이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소로가 간소함을 역설하는 이유는 ‘자유’를 위해서다. 생활의 복잡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적을수록 정신은 그 만큼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정신은 개인의 신성이 내재된 것으로, 그것이 구속되지 않을수록 ‘Self-Reliance’의 가능성이 커진다.


근대 이후 인류가 최고의 가치로 여겨온 발전이란 결국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을 정복하고 훼손하는 과정이었다. 인간은 작은 편리와 육체적 안락을 찾는 과정에서 그들의 자유와 쏙독새의 울음소리, 쾌적한 아침공기를 희생시켰다. 지구는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자원을 갖고 있으나 인간의 탐욕을 만족시키려면 열 개의 지구를 가지고도 모자랄 터이다. 탐욕의 문제에서 접근하지 않는 한 환경문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로의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인 삶과 사상은 오히려 오늘날의 우리에게 큰 시사점이 된다고 하겠다.

 


자연은 친구요, 신부다

 

또한 소로는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 “정직하고 명예로울 뿐만 아니라 기분 좋고 영광스러워야” 한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만약에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 위와 같이 영광스럽고 명예롭지 않으면 인간 삶도 그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초월적인 삶을 추구하는 소로에게 있어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그가 추구하는 삶에 부합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이처럼 소로가 추구하는 초월적인 삶과 그의 삶에 부합하는 생계 유지 방식은 그의 작품 곳곳에 나타나 있다. 가령 “생계를 얻는 과정에서 순진 무구함을 잃느니 차라리 곧바로 굶어 죽는 편이 낫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깨어있는 정신상태에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소박하고 현명하게 생활한다면 이 세상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운 일이라는 것이다. 소로는 소박한 삶그 자체인 그의 물질적인 생활을 통해 세속적인 삶 및 그것과 관련된 자신을 구속하는 일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는 “하나의 진실된 비전을 위하여 세상의 모든 부와 모든 영웅들이 행한 그 모든 결실들을 바칠 것”이라고 했는데, 그에게 있어 진실된 비전이란 초월적인 정신으로 이는 “무한함을 분별해 낼 수 있는 순수 비전의 근원”이 될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마음의 순결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초월적인 사상을 지니고 그러한 삶을 산 소로의 관점에서 생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있느냐에 대한 답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와 같은 답이 돼야 했던 것이다.


소로는 자연 속에서 자유를 찾고 아무런 구속 없는 무한 자유를 향유한다. 자연의 언어를 읽기 위해 소로는 모든 감각을 이용했다. 자연과 소로가 한없이 친밀한 관계라는 것은 <월든>에서 그가 자연에 대해 쓰고 있는 용어들, 가령 ‘companion’ ‘club’ ‘bride’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자연을 자신의 신부나 친구로 생각할 만큼 깊은 애정과 친밀감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숲 속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으나 외롭지 않았고,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 일종의 쾌락을 느꼈다. 그는 본질이 같은 대상인 자연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즉 자연과 인간의 내재신성은 같은 성질의 것인 셈이다.

 


불복종 사상

 

“나는 누구에게 강요 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소로의 사회 참여 사상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책이 바로 <시민의 불복종>이다. 그는 기존 사회 질서의 부당함에 개인적으로 저항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1838교회세를 거부했고, 1842년부터는 인두세(성인이면 무조건 내는 세금)’를 내지 않았다. 이는 당시 미국 정부가 노예제도를 계속 용납하는 데다, 영토 확장을 위해 멕시코 전쟁까지 일으킨 것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그는 부도덕한 정부에 대항해 세금을 거부함으로써 비폭력적인방법으로 개인적인 선전포고를 한 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구두를 수선하러 마을에 왔다가 잡혀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친지 한 사람이 그의 세금을 대납해 다음날 풀려난다. 비록 그가 감옥에 갇힌 것은 단 하루 동안이었지만 그는 이 사건을 통해 ‘개인의 자유에 대립되는 국가 권력의 의미’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되었다.


그는 <시민의 불복종>에서 현 정부를 즉시 개선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역설하는데, 이는 ‘투표’에 의해 정부를 개선하려는 미온적인 방법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이며 급진적인 방법으로 법이 자신의 양심에 거슬릴 경우 이런 법을 만든 정부의 권위를 부정하며 ‘법을 위반’할 것을 주장한다. 이 때 소로는 평화적인 혁명Peaceable revolution을 성취하기 위하여 피를 흘리는 경우가 있더라도 악덕 정부는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민의 불복종>의 근간이 되는 것은 초절주의에서의 ‘도덕률’이다. 초절주의에서의 도덕률은 ‘개인의 양심’을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삼기 때문에, 미국의 물질지향적인 특성은 국민으로 하여금 불감증을 갖게 하며, 자기기만적인 만족감을 유도할 뿐 아니라 국민을 수동적으로 만들어 도덕적으로 비겁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이처럼 부정적인 요소 대신 소로는 양심 있는 시민들이 ‘현명한 소수 시민 집단’을 형성하여 정부가 잘못을 저지를 때 비폭력 투쟁을 벌일 것을 강조한다. 비폭력적인 저항은 정부가 하는 부당한 일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많이 다스리는 정부에 저항하라

 

소로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이며, ‘전혀 다스리지 않는 정부’까지도 받아들인다. 정부는 기껏해야 ‘하나의 편법’에 지나지 않으며, 거의 언제나 ‘불편한 존재’가 되는 것이 정부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작은 일’을 하게 하는, 모든 소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정부를 그는 ‘진보된 정부’로 생각한다. 정부라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도록 돕는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소로는 정부의 폐지가 아닌 보다 나은 정부를 원한다. 이를 위해서 사람들은 존경 받을 만한 정부가 어떤 것인지 밝혀야 한다.


정부는 옳고 그름을 결정할 때 ‘다수’가 아니라 ‘양심’에 따라야 한다. 소로는 우리가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이므로,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다. 개인의 도덕성은 집단 안에서 발휘되지 못한다. 법 또한 그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조차 불의의 하수인이 되어버린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일단의 병사들이다. 이들은 정의를 잃어버린 ‘송장’에 불과하다. 단지 극소수 사람들만이 송장이 아니라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 쓰이기를 바란다. 이런 정의와 양심을 가진 사람에게 미국정부를 인정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일 뿐이다. 국민의 1/6이 노예가 되고, 미국의 군대가 외국을 침입하도록 불의의 억압과 강탈이 조직화된 이 시기가 바로 우리에게 인정된 혁명의 권리를 행사할 때이다.


소로가 비난하는 대상은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먼 곳에 있는 자들과 협력하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자이다. 이들은 비록 소수이지만 다수의 대중보다 실질적으로 더 현명하여, 단 몇 사람이라도 ‘전체를 발효시킬 효모’가 되어주어야 한다. 즉 전체가 선하게 되는 것보다 절대적으로 선한 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노예제도와 멕시코전쟁에 반대하는 소신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방관하는 자세 내지는 탄원서를 내는 등의 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정작 진지하게 추진하여 효과를 거둘 정도의 일은 하지 않는다. 같은 이치로, 정의 편에 투표하는 것은 단지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자신의 의사를 사람들에게 가볍게 표시하는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 인간이라면 최소한 악과 관계를 끊을 의무가 있고, 그 악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없도록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노예제도 폐지론자들은 몸으로나 재산으로나 매사추세츠 주 정부를 지원하는 일을 당장 중지하고 정의가 자신들을 통해 승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가 이웃들보다 더 의롭다면 그는 이미 ‘한 사람으로서의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소로는 매사추세츠 주 안의 단 한 명의 정직한 사람이라도 노예 소유를 그만두었다는 죄목으로 형무소에 갇히는 일이 생긴다면 그를 시작으로 미국에서 노예제도는 폐지될 것이라고 말한다. 일단 옳은 일이 한번 행해지면 그것은 영원히 행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격리되어 있으나 실은 자유롭고 명예스러운 곳, 감옥에 갇혀있는 의로운 사람은 물리적인 속박에 관계없이 더욱 더 큰 정부의 적으로 존재한다. 진리는 오류보다 더 강하며, 감옥 안에서 불의를 직접 겪어본 사람은 더 큰 설득력을 갖고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온 몸으로 투표할 때 즉,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져 정부에 불복할 때 소수의 힘은 거역할 수 없는 무엇이 될 수 있다.

 


국가의 권력은 개인으로부터 나온다

 

정의를 알고 실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혁명적인 것으로, 이는 사물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변화시킨다. 불의의 법이 존재할 때, 다수를 설득시켜 법을 개정시킬 수 있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법에 저항하는 것이 불의한 법 자체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법이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그 법은 지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자신을 해악에게 빌려주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악을 치료하려 하지 않을 경우, 또는 탄원이 의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해 주 정부가 아무 것도 마련해 두지 않았다면 주 헌법 자체가 해악인 것이므로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소로의 주장이다.


정치가와 입법자들은 그들의 경험과 분별력으로 교묘하고 쓸모 있는 제도를 만들어 냈지만 그들은 세상이 정책이나 편법으로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입법의 가장 좋은 방법은 입법자의 말재주 보다, ‘일반 국민의 풍부한 경험과 효과적인 불만 표시로 잘못을 시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완성될 수 있다. 또한 지금까지 미국은 개인에 대한 진정한 존중을 향해 진보하여 왔으므로, 정부는 본인이 허용해 준 부분 이외에는 언제나 피통치자의 허락과 동의를 얻어야 하며 국가는 그 권력과 권위가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맞는 대접을 개인에게 해주어야 한다.

 

일생 동안 국가나 사회 제도들에 대체로 관심이 없던 소로였지만, 1850년 제정된 '도망노예법'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는 이 법에 반대해 농장에서 도망치는 노예를 도와주기도 하고 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쓰거나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노예제도의 철폐를 위해 결성된 모임에는 가담하지 않았고 오히려 직업적인 개혁가들을 냉담하게 대했는데, 이는 인간을 노예로 삼는 것이 인간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름의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을 뿐, 전면에 나서 활동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예 문제를 둘러싸고 과열되어 가는 사회 분위기에 차차 실망하게 된 소로는 원래의 자기 자리인 자연으로 돌아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에 몰두하다, 1862 4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