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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06.14 [조선 뒷골목 풍경 2] '이승의 지옥' 감옥

6월 14일 강추 북릿 목록

HOT 북릿/Update 북릿 2012.06.14 15:32 posted by booklet



오늘 새로 업데이트된 북릿 중 '강추'하는 북릿들입니다.


물론 이 목록에 빠졌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북릿은 모두 재밌고, 유용합니다 :)



     




1. 반려동물이 사람 마음을 치유하는 4가지 원리





2. 장하준 교수의 신자유주의 비판





3. [조선 뒷골목 풍경 2] '이승의 지옥'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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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감옥이란 단어는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이라 불렀다. 당시 한양에는 지금의 서울구치소 격인 전옥서典獄署가 있었고, 의금부, 포도청, 내수사 모두 각각 별도의 옥을 두었다. 지방 감영 소재지와 각 군현에도 옥을 두어 죄수들을 구금할 수 있었다. 이 중 전옥서가 대표적 수감시설이었는데, 그 곳은 현재 영풍문고가 자리하고 있는 종로구 서린동에 있었다. 1894 갑오경장 때 전옥서의 명칭이 감옥서監獄署로 바뀌면서 본격적으로 감옥이라는 명칭이 쓰이기 시작했다.

 

세종의 배려 한옥과 서옥

 

 조선이 세워지고 감옥제도가 정비된 것은 세종 때였다. 세종은 특별히 죄수 처우에 관심을 두어 서울과 지방 감옥의 표준설계 지침을 마련했다. 세종이 만든 감옥 표준설계 지침에 따르면, 남녀가 수감될 옥을 별도로 짓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겨울용 한옥寒獄과 여름용 서옥暑獄을 따로 두어 죄수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실제로 1870년대 전옥서의 서리를 지냈던 이의 증언에 따르면, 전옥서의 옥사 일부는 판자로 바닥을 깐 여름용이었고 나머지는 온돌을 깐 겨울용이었다고 한다.

 

부작용과 한계

 

 그러나 감옥사정이 세종의 의지대로 계속 지켜지기란 어려웠다. 세종 이후 조선 중기 전옥서와 의금부 옥에서 남, 녀 죄수의 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남녀 죄수 간 문란한 성생활이 일어났음은 물론 여죄수가 옥중에서 아기를 출산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또한 온돌이 설치돼 있었다지만 죄수들을 위해 매해 겨울마다 불을 지핀다는 보장도 없었다. 당연히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전염병으로 옥사하는 죄수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중종 13(1519) 기사에 나타나있듯 심한 경우에는 동짓달 찬바람에 옥에 갇혀있던 30여명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수용능력 또한 한계가 있었다.  1781(정조 5) 형조판서 김노진이 형조의 박일원에게 위탁해 형조의 소관사무를 정리해놓은 <추관지秋官志>에 따르면, 18세기 전옥서에는 남자 죄수를 수용하는 옥사가 모두 9, 여자 죄수를 수용하는 옥사는 5칸이 있었다. 정확한 면적이 기록돼있지 않아 단언하긴 어렵지만 인조, 효종 임금 당시 실록에 나오는 40~100명 정도의 죄수를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광해군 때엔 300명이 넘는 죄수가 전옥서에 수감되기도 했었는데, 김직재 역모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5개월간 수감된 유진柳袗이라는 사람의 옥중일기인 <임자록壬子錄> 그 처참한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위생과 급식

 

 그렇다면 옥중 위생상태는 어떠했을까? 옥중 위생상태에 대해서는 세종 30(1448) 임금이 각 지방에 하달한 옥중 위생 관리 규칙에서 그 실상을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이 규칙에 따르면, 매년 4월부터 8월까지 옥 안에 냉수를 수시로 넣어주어 죄수들이 마실 수 있게 하고, 한 달에 한번 머리를 감을 수 있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5~7월까지는 죄수가 원할 시 열흘에 한번 정도 몸을 씻을 수 있게 하며, 10~1월 겨울철에는 옥 안에 볏짚을 두껍게 깔아 주도록 지시했다. 무더운 여름철에도 한 달에 한번 머리감기가 허락된 셈인데, 이마저도 세종 임금의 특별한 지시 덕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 조선시대 감옥살이는 가난한 죄수들에게는 곧 굶어 죽는다는 것을 뜻했다. 일반 백성들도 보릿고개다 뭐다 해 제대로 끼니를 잇기 힘든 마당에 죄수들에게 제대로 된 음식이 공급될 리 만무했다. 그나마 제대로 된 옥바라지를 해줄 수 있는 가족들조차 없는 죄수들은 꼼짝없이 끼니를 거를 수 밖에 없었다. 1878년 당시 제6대 천주교 조선교구장이었던 리델 신부가 들창문 하나 없는 움막 같은 감옥에서 굶주림에 지쳐 잠잘 때 썩은 볏짚베개를 뜯어서 씹곤 했다는 일화는 조선 감옥의 식사공급상황을 방증하는 한 예이다.

 

(), 이승의 지옥

 

 지금을 사는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열악한 수용조건과 위생 환경 등을 가졌던 옥의 고통은 이 뿐 만이 아니었다. 감옥은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뿐만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온갖 괴로움을 한데 모아 놓은 곳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저서 <목민심서>에서 당시 옥살이의 다섯 가지 괴로움을 의미하는 옥중오고獄中五苦를 정리해 두었는데, 그것들은 형틀의 고통, 토색질(돈이나 물건을 강탈당함) 당하는 고통, 질병의 고통, 춥고 배고픈 고통, 오래 갇혀 있는 고통이다. 다른 고통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토색질 당하는 고통은 지금의 우리로선 짐작하기 힘든 이유다. 죄를 짓고 들어와 형을 사는 고통은 그나마 참을 수 있다 하더라도 고참 죄수들과 옥졸들의 가혹행위와 토색질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서울여대 정연식 교수의 책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1>에도 인용되어 있는 <목민심서>의 감옥 내 생활을 보면 이렇다.

 

 “옥을 지키는 옥졸들은 스스로를 신장神將이라 칭하며 지옥을 지키는 사자처럼 행동했고, 스스로를 마왕魔王이라 부르는 고참 죄수들은 자기 밑의 부하 죄수들을 영좌領座, 공원公員, 장무掌務 등 갖가지 직책을 붙여 부렸다. 이들이 옥에 갓 들어온 신참 죄수들을 괴롭히는 주된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매번 신참 죄수들이 들어오면 이른바 학춤, 원숭이걸기, 알짜기, 골때리기 등의 가혹한 고문을 자행해 신참 죄수들의 돈을 뜯어내려 했다. 신참 죄수들은 옥에 들어오면 여러 관문을 차례로 통과해야 했다. 먼저 옥문에 들어서면 옥문례踰門禮를 행하고 돈을 내야 했다. 그 후 감방에 들어서면 먼저 옥에 있던 죄수들과 지면례知面禮라는 이름의 상견례를 치러야 했다. 그런 뒤 먼저 있던 고참죄수들과 옥졸들은 신참의 목에 칼을 씌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끔 괴롭히다 칼을 벗겨주면서 환골례幻骨禮를 거치게끔 했고, 며칠 후에야 정식으로 면신례免新禮를 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들은 말이 좋아 예, 옥에 먼저 있던 사람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함을 일컫는 것이었는데, 신참 죄수가 감방 사정을 잘 파악해서 사식私食이나 돈을 뇌물로 줘야만 이 같은 신고식을 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옥 내 가혹행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는 정조 7(1783) 10월 황해도 해주 감옥에서 발생했던 박해득 치사사건을 들 수 있다.  사망한 박해득은 해주 감옥의 신참죄수였다. 옥졸 최악재란 자가 박해득으로부터 50냥을 뜯으려 했으나 박해득이 말을 듣지 않자 그는 고참죄수 이종봉을 시켜 박해득을 손 봐주도록지시했다. 이에 이종봉은 박해득을 잡아 담 아래에 세우고 박해득이 쓰고 있던 칼의 끝을 그의 발 등 위에 올려놓고 새끼줄로 칼판과 다리를 함께 묶어놓았다. 박해득은 등을 구부정하게 구부린 채로 꼼작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넘어져 머리를 담벼락에 부딪히게 되고 목뼈가 부러져 열흘 만에 죽고 말았다. 옥은 돈 50냥으로 사람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해서 정약용이 <목민심서>에 쓴 은 이승의 지옥이라는 말만큼 조선시대 옥을 설명하기 적절한 표현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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