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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26 6월 26일 강추 북릿 목록
  2. 2012.06.26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습관 6가지

6월 26일 강추 북릿 목록

HOT 북릿/Update 북릿 2012.06.26 13:28 posted by booklet



오늘 새로 업데이트된 북릿 중 '강추'하는 북릿들입니다.


물론 이 목록에 빠졌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북릿은 모두 재밌고, 유용합니다 :)



     




1. [생활법률상식] 어디까지가 가정폭력인가





2.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습관 6가지





3. 취업률을 높여주는 돋보이는 자격증 5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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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말에 ‘말은 모든 악의 근원’ 이라는 금언이 있다. 사람의 모든 나쁜 일과 재앙은 말에서 오기 때문이다. 물론 말만 잘하면 천냥 빚도 갚는다라는 좋은 말도 있다. 하지만 이 말은 달리 보면 말을 못하면 천냥 빚을 갚을 수 없다는 뜻도 된다. 누군가에겐 절대로 갚을 수 없는 빚을 다른 누군가가 말로서 갚게 되면 그런 차이점은 온전히 대화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도대체 대화란 것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왜 사람은 적을 만드는가?

 

사람은 모든 생물체 가운데 유일하게 복잡하고 추상적인 메시지를 소리를 통해 전달할 수 있다. 지구상에 알려진 생물 가운데엔 인간보다 더 깊은 생각을 하는 종류가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생물들 중 인간처럼 복잡한 소리, 대화로 메시지를 교류하는 종은 없다. 고상한 철학부터 저차원적 욕설과 협박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다양하고 복잡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아마도 모든 원인은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그저 간단한 메시지만 전달하는 데는 대화가 필요없다. 울음소리나 웅얼거림으로도 충분하다. 개와 고양이는 물론 가장 IQ가 높다는 돌고래도 그저 울음소리같은 음파로 간단한 메시지를 전하며 산다. 그들은 누군가를 속이지도 않고 위선을 부리지도 않은 채 그저 본능대로 산다. 오로지 대화를 할 수 있는 인간만이 거짓과 위선, 허영을 잔뜩 부리며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기쁘게 해준다.


여기서 하나의 위대한 사실이 탄생한다. 사람은 오로지 대화만으로 친구를 만들 수도 있고, 애인을 만들 수도 있으며 적을 만들 수도 있다. 또는 대화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적이 될 수도 있다. 이렇다보니 대화는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한 기술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대화지만, 누구나 능숙하게 구사할 수 없는 것이 또 대화다. 시중에 나와있는 많은 대화술과 처세술 관련 책들은 이런 사실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 우리는 대화로 친구를 만들지 못하는 반면, 잠시의 방심 섞인 대화로 적만 잔뜩 만들고 만다. 일단 생긴 적은 다시 친구로 돌아서기 힘들다. 때문에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 방식은 일상의 습관으로 굳어져야 한다.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습관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말을 줄이자

 

과한 것보다는 모자란 것이 좋다는 경구가 있다. 지나친 말은 실수할 확률을 증가시킨다. 말실수는 한번 하면 엎질러진 물처럼 주워담기 어렵다. 다른 사람에 대한 잘못된 말은 그 사람을 적으로 만든다. 뒤에서 험담을 했거나 앞에서 지나친 모욕감을 주었다면 그 사람은 적이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사 이치는 모두 비슷하다. 무술에 있어 상대에게 허점을 가장 적게 보이는 방법은 최대한 몸을 낮추고 동작을 적게 하는 것이다. 노래를 부르는데 이른바 삑사리를 가장 적게 내는 방법은 음역차가 가장 적은 노래를 골라 부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화로 인한 적을 만들지 않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대화에서 나올 실수를 줄이는 것이다. 말을 줄이면 당연히 자세를 낮춘 몸처럼 실수도 나오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혹은 처세술에 따라서 대화 방법은 다양하다. 필자처럼 과묵하고 신중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반면, 과감하고 쾌활한 대화가 친구를 늘리고 좋은 인간관계를 만드는 지름길이라 말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정답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남이 어떤 말을 했느냐가 아닌, 그 말이 내 성격과 내가 처한 상황에 맞느냐 아니냐다.


모든 것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를 말하기에 앞서 좋은 대화란 어떤 것이냐를 생각해보자. 좋은 대화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면 사람 사이 대화가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 그런 뜻에서 이 첫 번째 항목은 단순히 말을 줄이라는 의미를 넘어, 스스로에게 그 대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닌 진정한 달을 보는 첫번째 방법이다.

 

진심을 담아 대화하자

 

사람은 누구나 안전한 위치를 원한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도 나는 상처받거나 미움받고 싶지 않다. 대화술이란 건 대체로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기술이다. 자기 진심은 최대한 숨기면서 현란한 화술로 남의 진심을 이끌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상대의 포장과 가식은 벗기면서 내 안의 가식은 그대로 유지한다면 주도권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그러니까 대화에 있어서도 이런 방법을 쓴다면 적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아니, 적을 만들더라도 그 적이 나에게 손해를 입힐 순 없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적을 만들지 않는 대신 진정한 친구도 만들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모든 사람을 그저 밀고 당기는 기술의 대상으로만 여기면 진심을 내보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시중에 나온 많은 처세술 책에 담긴 대화술은 그저 기술일 뿐이다. 그 안에는 깊은 통찰이 결여되어 있다. 진정으로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는 사람이다.


한국의 구한말에 해당하는 일본 막부말기 역사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일본 전체가 존왕양이(천황을 받들고 서양인을 몰아내자)를 주장하는 사람과 좌막개국(막부를 지키고 나라를 개방하자)는 주장으로 갈려 싸우던 시절이었다. 학문을 익혀 이론으로만 싸우던 한국과 달리 무사문화의 일본은 주장이 다르면 서로 칼을 들고 베어죽였다. 따라서 두 진영은 수시로 서로를 칼로 죽이려 했다. 유신지사와 신선조라는 양쪽 무사집단의 싸움은 잔인한 살육을 동반했지만 따지고 보면 개인적 원한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두고 부딪친 이데올로기의 충돌 때문이었다.


이때 좌막개국을 주장한 막부 측의 유명한 관리 가운데 한 명을 죽이겠다고 밤중에 칼을 들고 찾아간 무사가 있었다. 다짜고짜 베려고 하는 무사에게 관리는 단호히 말했다. 일단 자기 이야기를 듣고 죽이려면 언제든 죽이라고 말이다. 무사는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셈 치고 관리의 말을 들었다. 밤새 진지한 대화가 오간 끝에 무사는 관리의 주장에 감화되어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이때 그 무사와 관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를 주고 받았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다만 대략 어떤 내용이 오갔을 지는 짐작이 간다. 관리는 자기가 품고 있던 신념을 진심으로 호소했을 것이고 무사는 결국 관리 역시 나라를 위하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만일 관리가 그저 대화술에만 의존해 얄팍한 말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진심을 보이지 않은 대화는 결국 스스로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진심이 담긴 대화는 적을 만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적의 마음을 돌려놓기도 한다.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습관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안전함을 원하는 처세술로 변질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글자 그대로 말을 줄이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필요없는 가식적 말을 줄이고 진심이 담긴 말만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좋은 대화습관이 될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그 어떤 기술을 넘어 이런 본질에 있다는 걸 기억하자.

 

함부로 단정짓지 말자

 

합리적인 대화를 가장 방해하는 사고방식이 무엇일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상대를 얕잡아보는 것이다. 가령 어차피 저 사람은 저 정도 밖에 안돼혹은 저 사람에게 더 바랄 게 뭐 있겠어식의 생각은 아주 위험하다. 대화라는 것은 끝까지 들어보고 상대 의사를 완전히 확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상대의 말이 중언부언하거나 횡설수설 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어떤 말이라도 일단 진지하게 끝까지 들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대화를 풀어가는 올바른 습관이다.


다른 나라 언어도 그렇지만 한국말은 그 어순상 결정적인 의미를 규정하는 말이 가장 뒤에 온다. ‘이것은 책입니다’라는 말을 한다고 치자. ‘이것은’을 거쳐 ‘책’ 이라는 말까지는 공통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뒤에 당연히 ‘~입니다’ 란 말이 올 거라 단정할 수는 없다. 갑자기 ‘~이 아닙니다’ 라는 말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말뜻이 정반대로 형성된다. 굳이 이렇게 극단적인 예를 들지 않아도 된다. 흔히 우리가 쓰는 '~인 것 같네요' 라든가 '~가 아닐까요?'의 경우는 단정형으로 끝나는 문장과 그 의미가 다르다.


대화를 하면서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중간에서 그 의미를 단정해 버리는 건 매우 위험하다. 그런 방식으로 상대와 대화하게 되면 거부감을 주게 되며 상대는 무시당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런 오해가 쌓이면 상대는 더이상 나와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돌아선다. 적이 되는 것이다.

 

상대와의 대화에 집중하자

 

어떤 방법을 가르치는 덴 공격적인 접근법과 방어적인 접근법이 있다. 대화에 있어 공격적으로 접근한다는 건 말로서 누군가를 설득한다든가, 감동시키는 방법을 뜻한다. 비장한 목소리로 감정을 잔뜩 넣어 말하는 웅변은 여러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강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공격적인 대화의 한가지 수단이 될 수 있다. 소박한 예를 들자면 핸드폰가게에서 고객에게 고가 스마트폰을 팔기 위해 던지는 대화, 보험판매원이 고객유치를 위해서 구사하는 대화술은 아주 공격적이라 볼 수 있다. 이런 경우의 대화술은 매우 까다롭고도 어렵다. 상대를 내 뜻에 따라오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상대를 대화로 움직이게 만드는 일은 절대로 쉽다고 말할 수 없다.


반면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습관'은 상대적으로 방어적인 접근법이다. 특별히 상대에게 능동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상황이 악화되는 것은 최대한 막을 수 있는 정도면 족하다. 대화를 통해 나란 사람을 긍정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꼭 친구로 만들 필요는 없다. 적으로 만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상대가 말할 때 자연스럽게 집중하자. 될 수 있는 대로 시선을 맞춰 상대의 눈을 바라본다. 간간이 진의를 다시 물어보거나 적당한 반문을 통해 이야기의 핵심을 이끌어내는 것도 좋다. 그렇게 하면 상대는 내가 보이는 집중과 주목을 느낄 수 있다.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되면 어떤 사람이라도 좋은 느낌으로 당신과 대화를 나눌 것이다. 대화 도중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은 물론 귀기울여 듣는 예의를 잊어선 안된다. 이것은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당신과 대화하면서 다른 곳을 계속 본다든가, 혼자 생각에 잠긴 상대를 만나면 어떻겠는가? 이런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못하면 상대를 적으로 만들 수 있다.

 

극단적인 대화는 피하자

 

대화하면서 싸우기 딱 좋은 주제가 무엇일까? 우선 종교 이야기가 있다. 신앙이 투철한 사람이라면 평소 아무리 점잖은 사람이라도 발끈할 수 있다. 자기가 믿는 신을 부정하는 사람 앞에서도 웃으며 관용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가장 짧은 시간 동안 대화로 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꼽아보면 단연 종교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역사상 종교 문제로 숱한 전쟁이 벌어졌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두 번째로 싸우고 싶거나 상대방과 사이를 그르치고 싶을 때 굳이 꺼내기 좋은 화제로 정치 이야기가 있다. 이 화제는 서로 지향하는 정치성과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일치한다면 대화만으로 굳센 정치적 동지이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화제다. 하지만 만약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면? 백분토론 보다 더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면서 당신은 훌륭한 정적을 만들 수 있다.


세 번째로 남녀의 성별 논란이 있다. 남자는 여자를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계속 탄압해왔고, 차별해 왔다. 이제야말로 여성이 해방되어야 한다고 치열하게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여자가 있다면 아주 쉽게 남자의 반감을 살 수 있다(군대 이야기를 꺼낸다면 더 심한 반감을 사는 것도 어렵지 않다). 반대로 여자는 속도 좁고 비겁하며 불평만 많다고 한번 매도해보면 처음 보는 여자에게 강렬한 증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세 가지 화제에 수반되는 공통점이 무엇일까? 극단적인 의견이 나오기 쉽다는 것이다. 종교는 본래 배타적인 요소가 많다. 정치는 상반된 이익집단의 사상이 극단적으로 충돌하고 조정되는 과정이다. 성별에 따른 논란은 정답이 나올 수가 없는 문제다. 그러니까 이런 극단적인 주제를 꺼내면서 동시에 대화에서 온화하지 못한 의견을 내놓는다면 적을 만들기 딱 좋다. 그러니까 극단적 의견 제시는 가급적 피하자.

 

항상 상대를 배려하라

 

요즘 교육은 점점 자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집단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의견을 똑바로 내놓는 것이 좋다고 배운다. 이게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점점 상대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고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의 대부분은 의외로 쉽게 방지할 수 있다. 역지사지라는 말대로 나와 상대의 입장을 뒤집어보면 된다. 내가 상대방이라면 어떤 식으로 말하면 불쾌할 지를 생각해보자. 그럼 내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이나 행동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그러니까 상대를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으면 거꾸로 유추해보자. 남이 어떤 말을 하면 내가 심한 불쾌감과 함께 그 사람의 적이 될까 하는 점을 말이다.


이처럼, 대화할 때 상대를 배려한다는 것의 시발점은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말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상대가 심신에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그 분야에 대해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불쾌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런 화제를 배제하자. 스스로 비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함부로 ‘살 좀 빼라고 이야기하거나, 학벌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는 사람 앞에서 굳이 명문대 출신의 공부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명절에 어른들이 노총각/처녀에게 너는 왜 결혼하지 않니라고 말하는 것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이야기들 역시 배려가 부족한 대화다. 내가 느닷없이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상처 입는다면? 상대도 마찬가지로 상처 입는다. 그리고 그 상처를 되갚아 주기 위해, 서로 듣기 싫은 이야기를 계속 던지는 경우도 있다. 이는 굳이 상처를 재생산하는, 악순환이다.

 

일부러 적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잘못된 평소 대화습관으로 인해 적이 생기는 것은 정말 속상한 일이다. 사실 우리는 남을 잘되게 하기는 어려워도 안되게 만들기는 쉽다. 당신의 적은 어떤 기회든지 당신의 앞길을 막거나, 당신이 하는 일을 그르치도록 훼방 놓을 수 있다.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기왕 한 번 사는 인생 굳이 적을 만들고 미워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적으로 삼는 것보다는, 대화를 통해 적이 아닌 친구를 만들고 연인을 만들고 동지를 만드는 것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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