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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05.29 단숨에 이해하는 칸트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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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강추 북릿 목록

HOT 북릿/Update 북릿 2012.06.14 15:32 posted by booklet



오늘 새로 업데이트된 북릿 중 '강추'하는 북릿들입니다.


물론 이 목록에 빠졌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북릿은 모두 재밌고, 유용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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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철학은 하나의 거대한 체계다. 그는 경험 이전의 지식인 ‘선험’이라는 개념으로 인간의 인식과 도덕성, 미적 판단까지 설명해내고 있다. 각각의 주제를 다룬 세권의 저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은 지금까지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중세기독교철학을 부정하며 신에게서 벗어난 인간을 진정한 사유의 주체로 만든 것이 바로 칸트이기 때문이다.

 

칸트의 인식론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인간은 어떻게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내가 짐작하는 사물의 모습과 실제 사물 본연의 모습이 같아야 ‘인간은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진술이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칸트 이전에는 크게 두 부류의 인식론이 존재했다. 먼저 데카르트를 위시한 합리론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에게 신이 부여한 인식능력인 ‘본유관념’이 있다고 주장했다. 절대적인 신이 인간의 이성을 허투루 만들지 않았을 것이란 추정이 그 근거다. 인간은 본유관념이 있기에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게 합리주의자들의 생각이다. 경험론자들은 데카르트에 반기를 들었다. 그들은 본유관념이 있다면 누구나 세계를 제대로 인식해야 하지만, 어린아이나 무식한 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경험론자들은 오로지 경험만이 인식능력의 근거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개별사례를 통해 일반명제를 추출해내고, 일반명제를 이용해 역으로 다른 개별사례를 추측해내는 인식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의 인식론은 합리론과 경험론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다. 그는 합리론자의 본유관념이 인간의 이성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독단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칸트에게 경험론자의 논리는 보편적 인식을 전면으로 부정한 회의론에 가까웠다. 경험에서 추출한 일반명제는 그에 어긋나는 경험이 나오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게 되기 때문이다. 칸트는 합리주의의 독단론과 경험주의의 회의론을 피해 제3의 길을 개척했다. 신으로부터 주어진 본유관념이 아니면서, 세계로부터 경험적으로 얻어낸 것도 아닌 인식의 기원을 찾아 나선 것이다.


3의 길은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개념으로 표출됐다. 인간은 그 자신의 고유한 틀과 형식에 따라 세계를 보고 이해하고 해석한다. ‘선험적 종합판단’은 그가 말하는 ‘인간이 가진 고유한 틀과 형식’을 말한다. 선험적 종합판단은 ‘선험(先驗)’ 즉, 경험 이전의 능력이며 신으로부터 부여 받지 않은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다. 칸트는 선험적 종합판단의 존재를 증명해나가며 인간의 인식능력을 입증했다.


그는 우선 인간이 사물을 직관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을 끄집어냈다. 가령 ‘나뭇잎은 초록색이다’라는 직관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다. 나뭇잎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나뭇잎이 외부세계에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어딘가에 무엇이 있다’는 공간지각능력이 없으면 나뭇잎 자체를 인지할 수 없다. 또한 나뭇잎을 봤다는 사실과 나뭇잎이 초록색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려면 직관한 내용을 곱씹어야 한다. 바라본 나와 곱씹는 나의 시간차를 이해할 수 없다면, 나뭇잎이 외부세계에 속하는지 내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시간을 지각하는 능력이 없다면 직관 자체가 불가능한 셈이다. 시간과 공간이 선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경험은 불가능하다. 경험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인간이 선험적인 틀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칸트는 인간이 판단하는 과정에도 선험적 범주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경험한 사실에서 일반명제를 추출해내기 위해서는 경험 이전에 존재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모든 개는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전체로 묶는 ‘전체성’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한다. ‘어떤 개는 꼬리가 없다’는 명제를 추출하려면 ‘다수성’이라는 범주를 알아야 한다. 이런 범주가 경험 이전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경험을 통해 일반명제를 추출해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칸트는 이런 방식으로 12개의 범주를 구체화했다.


마지막 작업은 직관과 판단을 연결하는 일이었다. 인간이 판단을 할 수 있다면, 직관한 자료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칸트는 ‘구상력’으로 이를 설명했다. 구상력은 일종의 상상력으로서, ‘직관한 내용을 다시 도식화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인간은 나무를 직접 보지 않아도 나무의 상()을 그려낼 수 있는데, 이는 인간이 구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칸트는 신도 아니고 경험도 아닌 인간 내에서 인식의 근원을 찾는 데 성공했다.


칸트의 인식론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그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초월적 의미의 물자체는 아니라고 말했다. , 인간은 경험할 수 없는 사물 본연의 모습을 인식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칸트가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만을 인식할 수 있다는 ‘회의론’을 전개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물 본연의 모습’과 ‘인간마다 달리 인식하는 상대적인 사물의 형태’의 중간 즈음에 위치하는 대상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어찌됐든 그의 인식론은 인간이 ‘절대적인 진리’를 알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함으로써 인식의 한계를 상정하고 있다.

 


칸트의 도덕론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법칙은 상대적인 경우가 많다. ‘인간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는가 하면, ‘착한 거짓말’이라는 말도 있다. 도덕규칙은 상대적이라는 얘기다. 칸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천이성비판>을 썼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도덕법칙,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당위성’을 갖는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찾는 것이 칸트의 목적이었다.

중세기독교철학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법칙을 신에서 찾았다. 도덕이 행해지는 원리는 인간의 본성이나 이성이 아닌 ‘신의 의지’에서 비롯했으며, ‘신의 명령’이 곧 보편적 도덕법칙이었다. 근세 경험주의철학에 이르면서 도덕은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을 중심으로 논해졌다. 홉스는 인간의 본성을 ‘자기이익추구의 이기심’에서 찾았다. 인간이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루소는 이에 반박하며, 이기심에 반하는 ‘자기애’를 강조했다. 인간의 욕구는 소박하며, 인간은 타인의 만족이나 아픔에도 공감할 줄 아는 존재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루소는 인간의 도덕성이 서로 공감하며 사랑하는 보편의지에서 나온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서양 근세는 신이 아닌 인간 본성에 입각해 도덕성을 설명하고자 한 시기였다. 문제는 도덕성이 ‘인간의 이기심이 나온 계산성에서 비롯하느냐, 타인에 공감하는 보편의지에서 나오느냐’였다.


칸트의 도덕론은 루소의 보편의지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양심 안에서 마땅히 따라야 할 도덕법칙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선험적 종합판단이 존재한다는 점을 전제하고 인식론을 전개했던 것처럼, 도덕론을 전개하기 전에 ‘모든 인간에게 타당한 보편적 도덕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논의를 전개했다. 논의의 핵심은 도덕성의 진정한 근거가 무엇인지, 보편타당한 도덕법칙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일이었다.


먼저 그는 이기심이 아닌 보편의지에서 나오는 도덕행위를 찾아야 했다. 인간의 도덕성이 보편의지에서 발현되는 것이라면 ‘보편의지에서 행해진 도덕적인 행위’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아무런 이득이 없으면서 그 자체로 선한 것이 존재한다면, 인간이 도덕률을 내재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칸트가 찾아낸 그 자체로 선한 것은 ‘선의지’였다. 우리가 추구하는 도덕적 행위는 그 자체로 선할 수 없다. 칼은 요리할 때 쓰면 인간을 먹여 살리는 선이지만, 살인에 사용하면 악인 것처럼 모든 도덕행위는 양면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일을 하겠다’는 의도 자체는 선이다. 선과 악은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로 판단하는 것이지만, 행위의 원인이 되는 선한 의지는 그 자체로 선하다. 인간은 선의지를 가지고 있고, 도덕성의 근거는 선의지다.


논의는 보편타당한 도덕법칙을 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출발점은 선의지였다. 선의지가 그 자체로 선한 것이라면, 선의지에서 나온 도덕법칙은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당위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어떤 도덕법칙이 선의지에서 나왔다는 점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칸트는 의지의 내용과 형식을 구분했다. 의지의 내용은 개인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욕구대상이다. 의지의 내용을 도덕법칙으로 삼으면 보편타당한 법칙이 나올 수 없다. 사적인 특수성을 제외한 의지의 형식을 따라야 공적으로 보편성을 가진 법칙을 얻을 수 있다. 어떤 행동이 의지의 형식을 따랐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보편화가능성의 원리’다. 한마디로, 내가 선택하려는 규칙을 모든 인간에 적용해도 괜찮다면 이는 의지의 형식을 따른 보편적 도덕법칙이 된다. 보편화 가능성의 원리에 따른 도덕명령은 ‘정언명령’으로도 표현된다. 정언명령은 ‘~하려면 ~해라’라는 가언명령과 달리 모든 경우에 따라야 하는 절대적인 명령이다. 칸트는 선의지의 형식만을 근거로 하는 정언명령이야말로 보편적 도덕법칙이라고 설파했다.

 


칸트의 미학

 

이중섭의 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중 어떤 것이 더 아름다운가? 이 물음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관적인 답변은 존재한다. 개인의 호불호에 불과하지만 인간은 예술에 대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적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칸트의 <판단력비판>은 이에 대한 답을 논하고 있다.


플라톤은 미의 기준으로 이데아론을 내세웠다. 이데아는 현세의 모체가 되는 진리의 세계로, 가시적인 현상세계는 이데아의 모방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이 이데아에 가까울수록 더욱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의 합리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은 미적 판단에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 신체의 비율이 조각상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화음의 규칙이 음악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논리다. 반면, 흄과 바크 등 영국 경험주의 미학자들은 인식론에서와 마찬가지로 미적 판단 또한 주관적이고 상대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미적 판단에는 과연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가? 칸트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답을 내놨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놓고 ‘무엇이 더 아름답다’고 언쟁을 벌인다. 이는 기준이 있다는 얘기다. 한편, 모두가 인정하는 아름다움의 순위는 없다는 사실은 보편타당한 기준이 없다는 얘기기도 하다. 칸트에 따르면 미적 판단은 ‘개별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과 연관시키는 의식활동’이다. 보편적인 미의 기준은 없지만 개별적인 작품에서 보편적인 기준을 끊임없이 찾아나가는 게 미적 판단이라는 얘기다. 칸트는 이를 ‘반성적 판단력’이라고 이름 붙였다.


물론 반성적 판단력에서 나온 기준은 일시적인 기준이다. 하지만 미학의 영역은 인식론이나 도덕론과 달라서 객관적인 기준이 없어도 판단이 가능하다. 미적 판단의 ‘무관심성’ 때문이다. 미적 판단은 예술품이 주는 미적 쾌감 외에 다른 목적이 없다. 작품을 보고 쾌감을 느끼느냐 아니냐가 미적 판단이 가진 목적의 전부다. 다른 목적이 개입되지 않으면 판단이 왜곡될 가능성이 없다. 아름다움 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개입되지 않는 무관심성이 미적 판단의 보편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공통감’은 미적 판단의 보편성을 보장하는 또 다른 장치다. 인간은 동일한 감정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공통감을 느낄 수 있다. 다른 목적이 개입되면 공통감이 틀어질 수 있으나, 미적 판단은 무관심성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공통감을 보존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술품에 관해서 만큼은 객관적인 기준이 없어도 보편성이 보장된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칸트철학 비판

 

칸트철학에 대한 비판은 ‘선험’이라는 개념에 집중된다. ‘과연 경험 이전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규명하는 게 가능하냐’는 물음이 그것이다. 따지고 보면 선험적 종합판단 또한 경험의 산물이다. 틀과 범주를 구체화하는 능력이 칸트의 경험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선험’에 대한 그의 철학이 성립과정에서부터 결함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도덕론의 중심이 되는 ‘보편화 가능성의 원리’ 또한 마찬가지다. 칸트는 보편화 가능성의 원리가 의지의 내용이 제거된 의지의 형식이라고 했지만,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역지사지의 원리는 경험적인 것에 가깝다. 수많은 도덕규칙에 대한 경험이 없다면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공통감’이나 ‘무관심성’ 또한 경험을 통해 발견해나가야 할 것이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다는 비판이 있다.

 

칸트철학은 분명히 허점을 갖고 있다. 그의 철학은 가설을 전제하고 역으로 입증해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선험을 경험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방식에서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의 철학이 가진 장점은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인간을 명실상부한 주체로 만들었다. 인간 바깥의 도움 없이 인간 안에서 인식주체를 구했다는 점에서 칸트의 시도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할만하다. 철학의 한계를 그은 점도 칸트의 공이다. 신의 절대적 영역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제일 처음 그만둔 사람이 칸트였다. 이로써 철학은 절대적인 진리를 구할 수 없다는 회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논의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칸트의 철학은 완전무결하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그가 하나의 기점이 됐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자료>

한자경(2006), 칸트 철학에의 초대, 서광사:경기 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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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일 강추 북릿 목록

HOT 북릿/Update 북릿 2012.03.13 11:14 posted by booklet


오늘 새로 업데이트된 북릿 중 '강추'하는 북릿들입니다.

물론 이 목록에 빠졌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북릿은 모두 재밌고, 유용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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